토요일에는 오션파크를 갔다왔다. 나는 뭘 하는 곳인지 몰랐다. 할로윈 파티를 한다기에 아 그래 9월 말이면 할로윈이지 하는 생각으로, 인터넷에 할인가도 있다기에 아 그래 300달러 정도면 괜찮은 거겠지 하는 마음으로 표를 사서 가게 된 것이다. 근데 왜 할로윈은 10월 말인데도 9월 말부터 할로윈이라고 홍보를 해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고 뭔놈의 놀이동산 입장료가 5만원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하긴 원래부터 이런 것들을 다 알고 있었다면 영영 오션파크는 구경도 못했을테다.


 하 근데 할로윈 파티랍시고 해놓은 것들이 너무 무서웠다. 처음에 뭣도 모르고 들어간 곳이 하필이면 귀신의집이었다. 영어로는 Hunter House라고 하는데 이게 귀신의 집인지 아니면 놀이기구같은 건지 알길이 없었다. 나는 대낮부터, 또 이렇게 입구부터 있는 것이 귀신의 집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어서 엉겁결에 들어갔다가 혼쭐이 났다. 사실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근데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아무것도 안보인다. 요만한 빛조차도 없어서 아무리 암적응을 하겠다고 한쪽눈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뭘 해도 아무 것도 안보인다. 어둠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나를 옥죄어 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후다닥 달려나왔다.


 오션파크는 정말 넓었다. 세 네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다른 구역으로 가려면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넓어서 그런지 줄을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보통 낮에 놀이기구를 타고 밤에 귀신의 집을 가는 경향이 있어서 낮에 귀신의 집을 가고 밤에 놀이기구를 타게 되면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다. 그래도 그렇지 하루종일 놀이기구를 얼마나 많이 탔는가 밤이 되자 몸이 너무 뻐근했다. 소리를 또 원체 많이 질러서 목도 아팠다. 옛날에는 놀이기구에서도 그냥 무덤덤하게 있는 것이 재밌었는데 요즘에는 있는대로 소리질러 가면서 타는 것이 더 재밌는 것 같다. 


 모든 놀이공원이 그렇겠지만 물가가 원체 비싸서 아무것도 사 먹지 못했다. 오기 전에 점심을 바깥 맥도날드에서 먹으면서 1500원짜리 햄버거를 두개 사서 친구와 나누어먹었는데 조금이나마 요기가 되었다. 그래도 저녁을 먹을 생각을 꿈에도 못하고 9시까지 공복으로 놀 수 밖에 없었다. 올해의 오션파크는 쏘우를 컨셉으로 지어져서 귀신의 집 중에는 쏘우에서 나오는 고문 기구들을 형상화 해 놓은 곳이 있었는데 그곳을 차마 들어가질 못했다. 심지어 올해 한 명이 심장마비로 죽었다고도 한다. 그냥 그런 곳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남겨두기로 했다. 어쨌든 쏘우를 형상화하는 음식들도 많았다. 상징적인 제품인 오디오 테이프를 빵과 화이트 초콜렛으로 구워서 내놓은 음식도 있었고 주사기에 소스를 담아서 고기에 꽂아놓은 음식도 있었다. 물론 그런게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남겨두기로 했다.


 저녁 7~8시 정도부터는 사람들이 워낙에 놀이기구를 타지 않아서 대부분 마감을 한다. 놀이기구는 많이 탔고, 귀신의집은 가기 싫고 해서 아쿠아리움과 분수쇼가 있는 중앙 구역으로 내려왔는데 이곳은 또 놀이기구들이 가진 매력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물고기를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정말 이쁜 물고기들이 많이 있었다. 분수쇼도 잘 조성되어 있었는데 중간중간에 화염방사기가 작동할 때마다 몇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열기가 느껴졌는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핵폭탄이 떨어지면 정말 증발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동으로 들었다.


 모든 것을 둘러본 후에야 아차 싶어서 팬더 마을로 갔다. 아쉽게도 팬더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ㅜㅜㅠㅜ엉엉 랫서팬더도 있었는데 보지 못했다. 다만 CCTV로 팬더가 자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꼭 술취한 아저씨처럼 자고 있었다. 팬더구경까지 마치고서야 놀이공원에서 나와 몽콕으로 향하여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추석이지만 쉬지 않는다. 홍콩은 특이하게도 공휴일 다음날을 자꾸 쉬려고 한다. 오늘이 본 추석날이지만서도 내일을 휴일로 정한 것은 분명히 변태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일 게다. 그래도 다행히 추석 저녁은 또 중히 여기는지, 오후 6시 이후에 있는 수업은 휴강이 되었다. Mid-autumn festival을 하는 코즈웨이베이로 구경을 가기로 했다.


 코즈웨이베이에서는 홍콩의 중추절마다 특이한 행사를 한다고 했다. 긴 행렬이 호랑이 탈을 쓰고 춤을 추는 그런 행사라고 하는데 약간 뮬란에서 봤던 호랑이 탈 행렬을 떠올리게 한다. 오후 여덟시 반부터 열 시까지 진행이 된다고 했지만 어디서 하는지 알길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빅토리아 파크에서 열리는 연등 축제를 구경가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청계천에 연등을 설치해 놓고 축제를 하듯이 여기서도 넓은 빅토리아 파크를 연등으로 가득채웠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버스가 막힐 것을 대비하여 조금은 이른 시각인 일곱시 십분에 버스를 타러 나갔지만 의외로 전혀 막히지 않고 십 분 만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한국만큼 이쁘지가 않았다. 웬 희한한 동물 모양 연등을 자꾸 설치해 놓은 품이 옷에 그려져 있는 이모티콘을 연상시켰다. 동물 모형을 만드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연등으로 만들었을 때, 모서리마다 각이지고 여기저기 누덕누덕 기운 듯한 인상을 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몇 년 째 연등 축제를 진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공연도 여러개 진행되고 있었는데 오케스트라 공연도 있었다. 웅장한 모습을 기대하며 여덟시가 되기를 기다렸고 드디어 오케스트라가 시작되는갑다 하는데 웬 진행요원들만 자꾸 무대로 들어왔다. 단체 티셔츠에 청바지 따위를 입은 사람들이 악기를 들고 들어오길래 아 비가 와서 악기 세팅을 지금 하는갑다 하는데 그 길로 자리에 앉아 음악 연주를 시작했다. 오케스트라가 서양식이 아니라 그냥 순 홍콩 전통 악기들로만 연주를 하는 것이었다. 익숙지 않은 나로서는 홍콩 음악이 지루하기 짝이 없어 그냥 자리를 빠져나왔다.


 다리는 아프고, 갈 곳은 마땅치 않고, 의욕을 떨어지는 찰나에 그냥 높은 곳에 올라가서 호랑이 행렬을 구경하기로 했다. 그래서 옛날에 갔던, 서점이 있는 높은 빌딩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중간에 애플 스토어가 있어 구경을 잠깐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못 나올 줄은 모르는 채로....


 홍콩의 애플스토어에는 드디어 아이폰8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난번에 센트럴에 있는 홍콩 최대의 스토어에 갔을 때는 11월이 되어야 들어온다고 그랬는데 그것은 아이폰X에 대한 이야기였고 아이폰8은 먼저 들어오게 된 모양이었다. 말로만 듣던 유리 외관도 이쁘게 잘 마감되어 있었다. 아무리 욕을 한다지만 그래도 아이폰은 아이폰인 모양이었다. 누가 유리로 휴대폰을 마감할 생각을 할까? 그러던 찰나에 함께 있던 룸메이트가 자기 휴대폰도 유리로 마감이 되어있는데 무겁고 잘 깨진다며 단점을 이야기해줬다. 응...? 아이폰이 처음이 아니야...? 하는 의문을 가지고 설마 뭐가 다르겠지 하며 룸메이트의 갤럭시 A7을 확인해 보았다. 똑같았다. 그 순간 아이폰 8은 1년만에 내놓는다는게 고작 아이폰6부터 2년동안 하나도 바뀌지 않는 디자인 그대로 차용한 것 뿐인 속터지는 휴대폰이 되었다.


 아이폰들의 배경화면에는 아이폰 시리즈 넘버가 붙어있는데 아이폰8은 그것이 없었다면 당최 이것이 7인지 6인지 구분을 못할 것이다. 아 그래, 뒷면이 다르다. 뒤집어봐야 아는 존재이다. 직원들이 굉장히 친절하여 구경을 하고 있으면 친근하게 와서 'Hi!' 혹은 'Have a nice evening!'이라며 인사를 해주는데 마침 다가온 직원에게 혹시 아이폰7이랑 아이폰8의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Of course, when you look at the back....'하는 찰나에 기능적인 차이점은 없냐고 다급하게 물어보았다. 그래 임마 유리 마감 알겠다. 그랬더니 AR기능으로 설명해주었다. 앱을 통해 증강현실을 구현하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그래도 이건 신기했다.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증강현실이 구현되고 있었다. 그래서 아 이게 아이폰7에서는 지원이 안되나요 했더니 물론 된단다. 근데 아이폰8이 훨씬 빠르다고 한다.


 또 뭘 주섬주섬 준비하더니 이번에는 나를 카메라로 찍으며 인물사진 모드를 보여주었다. 아 광고로만 봤던 그거구나, 심드렁하게 있는 찰나에 순식간에 인물만 가려내서는 배경을 지우기도 하고 배경을 흐리게 만드는 효과를 주기도 하였다. 오오 이거는 대단한 능력이군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인물사진모드와 AR을 합해서 얼굴만 따와서 AR로 합성을 하는 기술을 보여주었지만 이제 뭐 그러려니 했다. 아무리 기능이 좋아져도 좀 디자인을 바꿨으면 좋겠다. 아이폰6는 매력적인 디자인이었는데 이제는 진부한 디자인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성능만 계속 좋아질거면 그냥 아이폰6s 가 그러했듯이 아이폰6ss나 아이폰7s를 내놓을 것이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설명해주는 직원분도 아이폰8을 쓰고 있기에 이거는 회사에서 지급이 되는 건가요 물어보았는데 샀다고 한다. 원해서 샀을까 아니면 설명을 해줘야하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샀을까. 아무리 DC가 많이 들어간다고 하지만 (친구는 아이폰7이 처음 나왔을 당시에 직원혜택으로 70만원에 구매를 한 바 있다) 도무지 이거를 새로 산 건지 아니면 그냥 아이폰7인지 구별이 안가서 지하철에서 아무리 흔들어 제껴도 저게 새로산 전화기구나 구별조차 할 수 없는 것을 그 돈 주고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아이폰8을 벗어나 맥프로와 아이맥, 맥os를 구경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렇게 놀다보니 호랑이 행렬따위 흥미가 떨어져 그냥 버스를 타고 기숙사로 와버렸다. 뭐 호랑이 행렬 재밌었겠지.

 현지 친구와 함께 영화관에 갔다 왔다. 재밌게 봤던 킹스맨의 뒤를 이어 킹스맨2가 개봉한다기에 교환학생 왔던 첫 주부터 손 꼽아 기다리던 일정이었다. 


 홍콩의 영화 가격이 비싸다고 친구가 말해주었다. 웬만해서는 100HKD 언저리 한다고 했다만, 최근에 룸메이트가 영화관 앱(홍콩은 영화관을 통합해놓은 앱이 존재한다!)을 받아서 확인해 보니 가격 차별이 충격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어떤 날은 50달러로도 영화를 볼 수 있는가 하면 가장 비싼 영화는 150달러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룸메는 28달러에 영화를 상영한다기에 학교에서 45분 떨어진 곳에 있는 영화관에서 '택시운전사'를 보고 온다고 했다. 가격폭이 워낙 널뛰다 보니 80달러가 넘어가는 영화는 바가지를 쓰는 느낌이라 앞으로는 영화관에 자주 갈 것 같지 않다. 토르가 나온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겠지만...


 내가 갔던 곳은 가격이 싼 축에 속하는 영화관이었다. 몽콕에 있는 뉴포트 서킷이라는 곳인데, 밖에서 봤을 때는 정말 동네 영화관이구나 싶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그래도 멀쩡한 영화관 같은 느낌이 났다. 팝콘도 팔고, (우리나라에서 작은 사이즈가 40달러, 약 6000원으로 판매되고 있으니 비싼 편이다) 에스컬레이터도 있었다. 


 허름한 영화관도 그럭저럭 괜찮다 생각하며 넘어갔는데 문제는 영화였다. 처음부터 내가 트랜스포머를 보고 있는 것인가 생각될 정도로 근본이 없는 장면들이 나왔는데 문제는 끝까지 근본없는 영화였다는 사실이다. 트랜스포머는 외계에서 온 생명체라는 컨셉이라도 되는데 이 영화는 악당 한 명이 열댓명 되는 부하들과 손수 제작한 것인지 웬 로봇들을 데리고 세계를 자신이 만든 약으로 오염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무기로 활용하는 로봇들은 트랜스포머 뺨도 칠 기세인지라 도대체 무슨 능력으로 저런 것들을 준비했는지도 잘 와닿지 않고 또 준비할 거면 좀 대량으로 생산해 놓지 정말 딱 세 대 만들어 놓았다.


 채닝 테이텀을 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도대체 이 영화에는 왜 출연했는지 모르겠다. 액션신이 제대로 나오는 것은 초반 한 번 뿐이고 그 뒤로는 악당의 약에 취해 냉동인간으로 존재하다가 결국 악당을 물리치고 나서야 치료를 받고 풀려난다. 이런 수준으로 3편까지 기대하면서 밍기적 밍기적 소재거리를 남겨둔 것일까?! 엑스맨 시리즈에서 날씨를 제어하는 능력을 가졌던 배우도 있었는데, 엑스맨에서는 액션신도 곧잘 소화해 내던 배운데, 아무래도 체력이 안되는 것인지 그냥 컴퓨터 제어하는 역할로만 나와서 아쉽기도 하였다. 죽다 살아온 콜린 퍼스는 1편에서만큼의 클래식한 분위기를 풍겨주지 못했고, 나머지 배우들은 영국과 미국을 섞어놓으려는 감독의 어설픈 연출에 희생당하고 만 느낌이었다. 도대체 영국 스파이가 미국 컨트리송을 부르면서 장렬히 산화하는 일은 도대체 왜 만들어 낸 것인지 모르겠다.

 

 로건에서도 울버린과 자비에 교수를 제외한 다른 기존 엑스맨 멤버들은 모두 죽은 채로 나왔다. 하지만 로건의 감독은 그들이 왜 죽었는지 제대로 밝히지 않았는데 이번 편을 보고 나니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다. 킹스맨1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지닌 배우들이었는데 초반부터 난데없이 미사일을 맞아 다 죽는다. 충격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아 인생이 이리 덧없던가, 주인공도 뭐 죽든 말든 별 일 아니겠구나 하는 허무함만을 느끼게 해주었다. 엑스맨의 배우들이 자비에 교수에 의해 어떻게 다 죽게 되었는지 영화에서 드러냈다면 영화 전개가 안 될 정도로 허무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렇게 기다리던 엔딩 크레딧을 보다가 영화관을 나오는데 영화관 출구는 또 영화관 외관보다도 훨씬 후줄근한 골목이었다. 냄새나고 어둡고 축축한 느낌에 진저리가 날 정도였다. 앞으로는 영화는 방에서나 보게 생겼다.

 느지막히 일어나서는 한참동안 정신을 찾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고는 신발 쇼핑을 하러 몽콕으로 향했다. 다음 주부터 풋살 수업을 듣게 되는데 운동화 하나와 캔버스화 하나로 일상생활에 축구까지 영위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사실 내가 물건을 잘 못 사는 편이다. 정말 확 마음에 드는 물건이 아니면 쉽게 사지 못하고 아직 내가 덜 필요한갑다 생각하면서 자리를 뜬다. 몽콕의 신발 매장은 짝퉁은 없다고들 헸지만 워낙 종류가 다양해서 내 마음에 확 닿는 것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아무것도 사지 못하였다. 가격도 그렇게 저렴한 건지 잘 모르겠고, 무엇보다도 내가 풋살화를 찾는 것인지 일상화를 찾는 것인지 둘 다 같이 할 수 있는 신발을 찾는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았다. 한 번 수업을 들어봐아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제대로 알 수 있을 듯 하다.


 내 두 번째 몽콕 방문이었는데 신발 매장은 처음이었다. 역시 시장이 크긴 하여 아무것도 사지 못해도 구경할 맛은 났다. 거리의 양쪽으로 신발 매장만 가득한데 그런 거리가 네 블럭 정도는 있었고 쇼핑을 하려는 사람들로 길거리가 바글바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드는 신발을 찾지 못한 것은 내가 까다롭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브랜드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가게들을 제외한다면 다른 가게들은 모두 다양한 종류의 브랜드를 다룬다. 그리고 그런 가게들만 제품에 할인을 적용해서 판매를 하고 있다. 그런데 할인을 적용하는 품목들이 그렇게 다양하지가 않다. 말하자면 그 수많은 점포들에서 볼 수 있는 신발들은 모두 나이키, 아디다스, 로또, 퓨마 , 리복 이렇게 다섯가지 정도로 유사하다는 것이다. 결국 제대로 된 마음에 드는 제품을 사기 위해서는 브랜드 자체 점포를 다른 쇼핑몰에서 찾아내든지, 위의 다섯 가지 브랜드에서 찾아내든지 해야 한다. 가격도 그렇게 싸지는 않다. 차라리 짝퉁이라도 팔았더라면 정말 싸다 싶어서 하나라도 샀을텐데 한국의 소셜커머스에서 보던 가격들이 생각이나 쉽게 물건을 살 수가 없었다.


 거리는 매캐한 스모그로 가득했고 신발쇼핑에 지쳐 먹거리를 찾으러 돌아다녔지만 이곳은 먹거리마저 저렴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길거리 시장으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작은 식당에서 대충 때우고 난 후에 간 노점상 거리에서 비로소 조금이나마 재래식 시장의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각종 중고 혹은 짝퉁 제품들이 그나마 쇼핑하기가 좋았다.


 그렇게 홍콩에 대한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 쯤에 함께 있던 현지인 친구에게 홍콩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학교에도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 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고 기숙사 엘리베이터에도 중국의 홍콩에 대한 정책에 불만을 가진 포스터가 붙어있기도 하다. 친구는 꽤나 중립적으로 말을 했다. 홍콩에는 중국의 개입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주장이 심심치 않게 들리기도 한다고. 친구 말에 따르면 천안문 사태 때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은 모두 중국 정부를 피해 외국으로 망명을 가 있으며 중국 정부는 아직도 그 사태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있지만 홍콩에서는 천안문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제3자가 보기에는 홍콩은 어디까지나 중국이다. 시민 의식, 사람들의 특성, 생김새 모두 중국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제3국의 시각을 홍콩 사람들은 알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


 요새는 웹툰 복학왕을 즐겨본다. 이미 한창 스토리 전개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보려니, 봐야할 것이 너무 많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보고 있다. 기안84는 그림은 참 못 그리는데, 스토리텔링을 잘 하는 것 같다. 경험이 그렇게 풍부한 건지, 주위에서 도움을 좀 받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고등학생 때 패션왕을 조금 보다가 우기명이 늑대인간으로 변할 때 즈음 그만뒀던 걸로 기억되는데 중간중간 그 때 보던 패션왕의 내용들도 섞여 있어서 더 감회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튼 복학왕을 보면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어제 클럽을 다녀온 후에 낮에 느지막히 깨어나서는 복학왕을 보고 있으려니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뿐이다. 그래도 다녀온 것은 다녀온 것이니 기록을 해두고자 한다.


 지난 번에 만났던 인도인 친구와 함께 클럽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친구 H까지 총 세 명이서 간 것인데, H는 중국 본토에서 온 유학생으로 여자친구가 베이징에 있었다. 방학 때마다 만나는 셈인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8년 째 만나고 있다고 한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사귀었다는데, 아직까지도 깨가 쏟아진다. 내가 있는 Hung Hom 역에서 침사추이 까지 걸어가서는 빅토리아 하버에서 맥주를 조금 마시고 나서 지하철을 이용해 Lan Kwai Fong 이 있는 센트럴까지 지하철로 이동하는 경로였는데 빅토리아 하버까지 걸어가는 길 내내 통화를 하던 것 같다. 충격적인 것은 모든 사실을 여자친구와 공유하면서 클럽에 간다는 사실까지 공유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아직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냥 이성 친구같은 것인가?? 예전에 홍콩, 중국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중국 남자아이들은 물어보면 하나같이 여자친구가 있는데 다들 7~8년 씩 되었다고 하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그때는 저 교수님이 도대체 어떤 애들을 만나고 온건지 궁금했는데 이런 애들이 아닐까 싶다. 친구들끼리 가는데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면서 면박을 주기도 했지만 정말 대단한 연애를 하고 있는 친구다. 응원해주고 싶었다.


 침사추이에서 지하철을 타서 센트럴로는 두 정거장이다. 한 정거장을 갔을 때 인도인 친구가 여기서 안내리는 사람들은 다 클럽을 가는 길이라고 해서 둘러보았는데 정말 복장이 모두 클럽을 가는 복장이었다. 아, 복장을 얘기하자면 또 할 얘기가 많다. 홍콩 클럽은 도대체 어떻게 입고 가야하나 걱정이 되어 가지고 있는 옷들을 전부 꺼내 보면서 고민을 했다. (그래봤다 5벌 남짓하다.) 인터넷에 hong kong club wear를 아무리 검색해 보아도 여자들밖에 나오지 않을 뿐이고 남자들의 모습은 일이 끝나고 가는 것인지 전부 셔츠 차림이다. 그래서 고심을 하다가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긴 바지인 와인 색 와이드팬츠에 단정해 보이는 셔츠를 신고 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클럽간다~ 멋 좀 내 봤다~'하는 한국인 촌뜨기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막상 학교 앞에서 만난 인도인 친구는 등산복 바지 같은 것에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어 신분증 역할을 할 여권을 찾으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지난 번에 산 나이키 그래픽 티셔츠로 갈아 입고 나갔다.


 센트럴 역에는 한 번 가 본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이곳에 클럽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웬 정부 건물들, 고층 건물들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D번 출구로 나가보니 또 다른 세계였다. 어디서들 이렇게 밤거리를 찾아서 나오는 것인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길거리 공연도 이뤄지기도 하고 차력쇼같은 걸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거리에서는 이상한 티켓같은 것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할인쿠폰 같은 것들인가 싶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하나씩 받아가면서 그냥 지나쳐가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하나를 받아가 도록 했다. 알고보니 클럽 무료 입장권 같은 것들이었다. 여행책자를 보면 입장권이 못해도 400달러는 한다는데 그럼 도대체 누가 돈을 내고 들어가는 거지?? 여튼 홍콩 클럽은 공짜로 갈 수 있는 셈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었다. 심지어 한 곳의 쿠폰은 무료입장에 음료도 한 잔 공짜로 준다고 하니 여기는 뭘로 돈 벌어 먹고 사나 괜히 걱정해 보았다.


 사실 정말 궁금했던 점은 클럽, 그 이후였다. 클럽의 본질적인 목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성을 만나 순간의 외로움을 달래는 곳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클럽 그 이후의 장소가 필요할텐데 도무지 이곳의 임대료로는 주변에 모텔같은 것들이 있을리가 만무하였다. 그래서 친구에게 살짝 물어봤더니 살짝 웃으면서 'Toilet'이라는 말을 했다. 진짜??????? 도대체 여기는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 동네인지 살아갈 수록 감이 오질 않는다. 정말 화장실에서???????


 우리가 쿠폰을 받아 들어간 곳은 levels라는 클럽이었다.(이제껏 레벨2로 알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줄이 정말 길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몰리나 놀라고 있을 무렵에 인도인 친구가 다른 여성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인사를 했다. "나 기억해?!"하면서. 여기서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떨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너 여기서 뭐하냐?!" "넌 여기서 뭐하냐?!" 하며 웃다가 어색해질 것만 같은데 인도인친구에게 물어보니 졸업 후 처음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란다. 얼굴을 알아볼수나 있었던게 신기하다.

 알고보니 길어보였던 줄은 신분증 검사 때문에 생긴 정체였고 입장은 그렇게 오래걸리지 않았다. 클럽을 지키는 문지기들은 도대체 무슨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덩치가 정말 컸다. 처음 만나보는 국적같았다. 영화에서 본 이슬람 갱들 혹은 마피아라면 이렇게 생겼을까. 사회에서 안 좋은 일로는 절대 만나기 싫은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손님들을 상대로 수금하듯이 행동하지 않고 정히 손님으로서 대해주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들어가게 된 홍콩의 클럽은 한국의 클럽과 똑같았다.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몇 개 있다가 중앙으로 들어가게 되면 사람들이 빽빽하게 숨을 쉬고 있는 스테이지가 있었다. 이런 곳으로 음악만 듣고 춤만 추러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몸이 밀착될 수 밖에 없는 인구밀도 상, 간단하게 신체 변화가 일어나는 남자에게는 애초에 불가능한 구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친구들은 새벽 2시 이전에 무료 입장과 무료 음료를 주는 티켓이 있는 클럽을 향해 떠났고 나는 조금 더 남아있게 되었다. 한 번 화장실을 가려고도 했다. 두근대는 마음을 붙잡고 화장실 픽토그램을 따라 걸어갔지만, 그곳은 말로만 듣던 그런 화장실이 아니었다. 덩치가 큰, 마피아처럼 생긴 사람이 줄 관리를 하고 있어서 이런 인구밀도에도 이런 청결함이 가능하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곳이었다. 바로 그 때,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해외까지 와서 이러는 것도 창피하다, 날 믿고 계실 부모님께 죄송하다...그렇게 갑작스럽게 무욕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는 바람에, 함께 춤을 추던 여성이 손을 씻는 동안 나는 그냥 밖으로 나와버렸다.


 친구들은 다른 클럽으로 들어가버린 상태고 내 텍스트를 받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하였다. 결국 나는 택시를 찾아 큰 길가로 나오게 되었다. Lan Kwai Fong의 어느 한 지점에는 사람들이 정말 길게 줄을 서 있는 곳이 있다. 얼마나 좋은 곳이길래 이렇게 못들어가서 안달인가 하고 보면 택시를 기다리는 줄이다. 절반 정도는 나처럼 현타를 느끼고 돌아가는 사람들이겠거니 하고 줄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자신이 없어 큰 길가로 나가게 된 것이다. 이곳을 향해 들어오는 택시들을 붙잡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예상외로 택시는 금세 잡혔고, 학교까지는 100HKD가 조금 덜 들었다. 기숙사 앞에 도착해보니 술에 취해 친구들에게 부축받아 기숙사로 들어가려고 하는 서양인들도 보였고 클럽에서 즐기다가 마찬가지로 현타를 받았는지 홀로 일찍 들어가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도 보였다. 다들 이렇게 미친 저녁을 보내다가 다음 날이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게 되는구나. 돌아와서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복학왕을 보면서 제대로 살아야겠다 다시금 다짐하며 잠들 수 있었다.

 점심을 유가네에서 먹게 되었다. Sha Tin 이라는, 학교에서는 조금 떨어져있는 곳에 커다란 쇼핑몰이 있는데 그곳에 유가네도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비싸고 양도 적어 잘 가지도 않던 유가네였는데 이곳 매장에 들어서면서 점원들이 서툰 한국말로 "반갑습니다 유가네입니다~" 뇌까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친구가 점심에 가면 무한리필에 88HKD 라고 하기에 가게 된 유가네였다. 하도 홍콩식 계산법에 치인 터라 88달러라는 사실을 믿지 않고 갔다만, 정말 맛있었다. 닭갈비의 양도 한국보다는 많다고 느껴졌다. 닭갈비가 아니라 밑반찬이 무한리필로 나온다는 점은 허를 찔렸지만 이조차도 맛있었다. 별다른 밑반찬은 아니고 일반 보리밥 뷔페에 가서 흔히 볼 수 있는 무한리필 반찬등이었다. 불고기, 잡채 등등...그런데 정말 먹으면서도 웃음이 터져나올만큼 맛있었다. 김치를 계속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가족들이 조금 더 여행을 하고 오라는 권유를 했지만 타지에서 더머물고 있는다면 정말 건강까지 나빠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한식이 그립다. 여기 음식들은 마늘이 잘 안들어가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컵라면에도 다진 마늘을 넣으면 맛있다는 것을 알 정도였는데. 여기음식들은 그래서인지 감칠맛이 좀 떨어진다. 달면 달고, 짜면 짜고. 마늘향보다는, 우리 표현대로 돼지 비린내를 더 좋아하는 듯하다.

 결국 1인당 100HKD씩을 내고 식당을 나섰다. 후식겸 해서 뷔페식 조각케익까지 준비되어 있었으니 한화 15000원도 그렇게 아까운 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쇼핑몰안에 있는 만큼 쇼핑을 하러 나섰지만 내가 뭘 사게 될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절대적으로 가성비를 따지는 나는 현대의 쇼핑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홍콩에 들고 온 옷 중에서 내가 산 것이라고는 2년 전에 군대에 있을 때 샀던 농부컨셉 황토바지 뿐이다. 일단 쇼핑몰이니 걸어댕기기나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나이키 매장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홍콩에서 쇼핑하는게 싸다는 말을 정말 나이키에 들어가서 처음 느껴본것 같다. 마음에 드는 옷 천지였는데 그것들이 정식으로 진열되어있는 게 아니라 떨이 제품처럼 한데 걸려 있었다. 카이리 어빙이 그려진 티셔츠가 149HKD, 한화 약 22000원에 등록되어있는 것을 보고 눈이 뒤집히는 줄 알았다. 서툰 영어 실력으로 '카이리 어빙은 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클리블랜드를 이끌어가던 선수였다. 근데 르브론 제임스는 기복이 좀 있는 편인지라 어빙이 가끔씩 팀을 혼자 이끌어 주는 때가 있었다. 지난 플레이오프에서 르브론이 어김없이 똥만 싸던 경기가 있었는데 그 때 어빙이 홀로 고군분투하며 팀을 이끌어 나갔다. 그러던 와중에 그가 발목 부상을 당했다.바닥에 쓰러졌고 선수들과 중계진은 경악을 하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가 벌떡 앉더니 신발끈을 꽉 졸라 묶더라. 그러고선 다시 경기를 뛰기 시작했다. 그게 내가 농구를 보던 것 중 가장 감명깊은 장면이다.' 라고 주절주절 설명했다. 말하면서도 소름이 돋을만큼 멋진 장면이었는데 친구가 이해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빙 셔츠를 찜해두고는 가격비교를 하러 다른 매장에 갔다가 해당제품이 없어 다시 되돌아왔다. 그런데 다시 보는 어빙셔츠는 방금 보면서 느꼈던 작년 플레이오프의 그 감흥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충 어빙을 그려넣다가 만 흰 티셔츠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엔 내 변덕에 소름돋으면서 나이키 매장을 나왔는데 조금 걷다보니 나이키 매장이 또 나왔다. 그곳에서 지금 입고 있는 그래픽 티셔츠와 빅토리아 하버가 그려져 있는 나이키 홍콩 셔츠를 샀다. 형에게 선물을 줄 수도 있겠지만 네 달 뒤에나 가능하겠기에 내가 잘 입다가 줄 생각이다.

 좋은 습관이 아닌 것을 알지만, 계속해서 홍콩에서 특히 싼 것을 찾아서 사려고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사실 그런 건 없다.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최저가를 검색할 수 있는 세상에서 홍콩 시장 바닥에서 더 싸게 파는 것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에 hong kong cheap brand라고 검색을 해보았고 가장 첫 번째로 보았던 것이 제니 베이커리라는 곳에서 파는 버터쿠키였다.


 나는 쿠키류를 무척 좋아한다. 달디 단 디저트 류를 좋아하는 듯 하다. 군대에 있을 때는 크리스피 크림 오리지널 글레이즈드가 너무 좋아서 제대 후에 도넛 가게 알바를 해봤으면 좋겠다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고 홍콩에 와서도 '입학식' 비슷한 행사를 갔을 때도 로비에 차려진 마카롱과 각종 케이크들에 너무나도 행복했다. 사실 내 돈 주고 사 먹는 것은 아까워서 잘 하지는 않는다만, 홍콩에서 살 수 있는 싼 제품들 중에 의류를 제치고 당당하게 1위를 하고 있는 버터쿠키 정도는 내가 사치를 부려서 사 봄직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학교에서 가까운 침사추이에 제니 베이커리가 존재한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다.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너무 한낮이었기 때문에 햇빛을 피해 버스를 타고 갔다. 홍콩에는 미니버스들이 존재한다. 우리나라 마을버스 정도의 크기인데 하차 벨이 존재하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웬만한 탑승객들은 대부분 내릴 때 즈음에 기사님에게 소리를 질러서 내리겠다는 의사 표명을 한다. 또한 버스가 제일 바깥쪽 차선에서 운행 중이라면 꼭 정해진 정류장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버스를 멈춰서 타거나 내릴 수가 있었다. 거의 택시 수준인 셈이다.


 놀랍게도 제니 베이커리는 내가 그간 침사추이를 갈 때마다 거쳐갔던 Chungking mansion 상가에 있었다. 영화 중경삼림을 본 사람이라면 홍콩에 왔을 때 한 번 쯤은 가고 싶어하는 청킹 맨션은 리모델링을 통해 영화의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고, 'Chungking mansion'이라 적힌 간판과 조금은 무섭게 보이는 1층만이(1층은 일부러 리모델링은 하지 않은 것인지 낡은 모습 그대로이다) 이곳에서 영화를 찍었구나 알게 할 뿐이다. 지나치기만 했던 청킹맨션의 2층으로 올라가니 내부 리모델링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인지 홍콩에서 봐 왔던 그냥 일반 쇼핑몰의 모습과 똑같았다. 영화의 느낌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실망스러웠지만 영화의 모습과 똑같았어도 너무 지저분해서 심히 실망했을 것이다. 제니 베이커리라고 적힌 표지를 따라가 보니 놀랍게도 빵집이 아니었다. 그냥 쿠키를 파는 조그마한 매대에 불과하였다.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빵집 이름처럼 해놓고는 그냥 쿠키를 만들어 다른 소매점들에 납품하는 업체에 불과하였구나 싶었다. 가격을 보니 더욱 실망스러웠다. 조그마한 철제 상자에 쿠키가 들어있는 것인데 98HKD이니 한화로 15000원 가까이 하는 셈이다. 내가 이걸 내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하는 것인가 고민이 잠깐 되었지만 앞으로 명품을 사 입을 것도 아니고 미슐랭을 찾아 다닐 것도 아니고 쿠키라도 하나 사치를 부려서 먹어봐야겠다 싶어서 그냥 샀다.


 하나 사긴 했다만 먹을 곳이 마땅찮아 카페에 들어갔다. 침사추이의 카페들은 임대료 때문인지 가격이 무지하게 비싸다. 25HKD로 한화 약 4300원 하는, 그나마 제일 싼 음료를 찾아서 주문하려고 하니 옆에 있는 미니캔에 담긴 코코팜, 봉봉  등 한국 음료들을 진열해 놓은 매대를 가리켰다. 200ml 정도 하는 것을, 한국에서는 500원에서 700원이면 사는 것을 4300원 주고 사먹어야 하는 것인가 싶어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38달러나 주고 딸기에이드를 샀는데 이것마저도 200ml정도 크기의 잔에 담겨서 나왔다. 욕 할 뻔 했지만 자리에 앉아 침착하게 버터쿠키를 맛보았다.


 진짜 맛있다. 네 가지 종류의 쿠키가 들어있는데 기본 베이스는 버터가 맞다. 버터링의 상위버전이라고 생각되는 맛인데, 한 번 쯤은 사치를 부려서 먹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나름 선방했다. 입에 들어가면 침 때문에 녹는 품이 아무래도 버터를 무지하게 많이 쓴 것 같다. 그래도 느끼하지 않고 맛있다. 사실 더 먹으면 느끼하겠지만 비싸서 한 번에 많이 먹을 생각은 없으니 차라리 다행이다.


 조금 먹다가 카페 알바가 와서 외부 음식은 안된다고 하기에 포기하고 딸기 에이드를 후딱 마셔버리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는 길거리에 진열되어있는 쿠키 상자의 가격만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98달러 이상 하는 상자는 없어 보였다. 기숙사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식료품 쇼핑을 하러 마트에 가 보아도 98달러 하는 과자는 아무 것도 없다. 정말 맛있어 보이는, 딸기 타르트를 과자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상자가 50달러에 판매되고 있었다.


 두 번 다시 사먹지 않은 과자이니까 한 번 맛 본 것으로 만족한다. 운동을 끝내고 돌아와 출출한 김에 우유와 함께 버터쿠키를 먹었다. 그래도 맛은 있으니까 다행이다.

 홍콩 현지 음식은 내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음식을 떠나 세밀한 거의 모든 부분들이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점심은 학생 식당에서 수업 중 만난 중국인 유학생과 함께 먹게 되었다. 중국 본토 사람 특유의 억양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서 예전에 함께 수업을 듣던 친구 Jack이 떠올라 잠깐 향수에 젖을 뻔했지만 학생 식당 메뉴로 나온 음식을 보고 온화함이라고는 삭 가시게 되었다. 리조토를 생각한 것인지 밥에 크림을 올린 음식이었다. 말 그대로 '올렸다' 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이 볶은 것도 아니고 뜨뜻미지근한 밥 위에 크림과 함께 브로콜리, 당근, 호박 등 갖은 채소들을 올린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한 두 스푼을 먹다가 이 음식은 도저히 콜라 없이는 먹지 못하겠다 싶어 콜라를 천 원 주고 한 컵 사왔다. 콜라와 함께 두 세 스푼을 먹다가 이 음식은 도저히 먹지 못하겠다 싶어 그냥 콜라만 마셨다. 중국인 친구가 나를 불쌍하게 여겼는지 자신의 음식을 조금 나눠주려고 했지만 차마 먹지 못하였다. 여기 음식이 입맛에 맞느냐는 질문에 난색을 표하며 잘 안맞는다며 손사레를 치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그래...다같이 못먹는 신세인데 너라도 잘 먹어라 하는 마음으로 그 친구의 밥상을 그 친구에게 넘겨주었다.

 

 이 곳은 음식에 잘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다. '신경'이라는 말이 조금은 광범위하지만, 그만큼 넓은 범위에서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맛의 배합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표현도 맞지만 오늘 하나 더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나의 그 문제의 음식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을 때, 음식접시가 놓여진 매대 위를 바퀴벌레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막상 보았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 뭐 바퀴벌레 정도야 지나갈 수도 있지, 더럽긴 하지만 쬐끄매서 세균좀 옮긴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근데 음식 맛도 없다 보니까 울화가 치밀어 도대체 여기는 바퀴벌레가 지나가던 말던 상관도 안 하는 곳인지 성질이 난다. 이런 음식만 제공 받는다면 음식을 먹지 않아 곧 죽을 것이다. 바퀴벌레보다 더 큰 문제이다.


 인터넷에 당연히 이딴 음식은 없을 줄 알았는데 hong kong cream rice라고 치니 바로 등장하였다. 정확히 똑같이 생겼다. 길쭉한 용기에 담긴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에 또다시 부아가 치민다. 부숴버리고 싶다.


 계속해서 홍콩은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너무 막연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것은 목적만 생각하고 과정은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인도 영화를 본다면 이해가 빠를 수도 있겠다. 인도 발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 '세 얼간이'에서는 학교의 선생님이 뻐꾸기를 들고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왜 들고 다녔는지 생각나지 않는 것은 도대체 저것을 뻐꾸기라고 관객들이 여기게끔 연출하였나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다. 뻐꾸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선생님이 그것을 들고 다니면서 학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줬느냐, 무슨 교훈이 있느냐 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리우드에서는 뻐꾸기 그 자체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그냥 대충 모형 뻐꾸기로 대체해 놓았다. 근데, 이왕 뻐꾸기를 활용한 이야기를 풀어나갈 거라면 그래도 진짜 뻐꾸기같은 것을 써서 몰입감을 해치지 말아줬으면 하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감상평이었다.

 

 홍콩의 거리는 인도영화보다 좀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야 교훈을 주는 것이 목적이니 연출에 그렇게 깊이를 두지 않는 것을 이해하겠지만, 거리 조경은 다르다. 심미적인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거리인데 홍콩은 그런 것을 전혀 무시한다. 물의 도시답게 여러 곳에 분수를 이쁘게 조성해 두었지만 분수 옆 거리의 포장 상태는 말이 아니다. 한 곳에서 포장을 끝내고 시간이 지나 다른 곳에서 포장을 시작하고, 둘 사이의 균열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도로가 이리저리 갈라져 있는 모습이다. 건물을 보더라도 아무리 녹이 슬고 균열이 생겨도 살아가는데 지장만 없다면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 둘 디테일이 망가지다 보니 어느 측면에서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생긴다. 균열이 너무 커져버린 것이다. 식판 근처를 멀쩡히 서성이는 바퀴벌레가 그러하고 인도를 걷고 있으면 머리로 뚝뚝 떨어지는 에어컨 실외기의 이슬들이 그러하다.

 이 사진도 hong kong air conditioner를 검색하면 dripping 이라는 검색 양식이 추천된다.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 호텔관광대학 'China Tourism' 수업에서 들은 것인데 홍콩 사람들이 중국 현지인들의 홍콩 여행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고 한다. 거리에서 아이가 소변을 보는 것을 방치한 중국 여행객의 엄마를 향해 시민들이 비난하는 영상을 시작으로 다양한 형태의 시위들을 보게 되었는데 실제로 일련의 시위들 이후로 중국 본토에서 오는 여행객의 수가 줄었다고 한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보기에는 홍콩 사람들이나 중국 사람들이나 똑같다는 것이다. 음식점의 종업원들은 불친절하고 거리의 공사는 디테일 없이 진행된다. 일본에서 보았던, 도로 벽돌 공사를 하면서도 안전모를 쓰고 작업을 하던 고지식한 인부들이 그리워진다.

 하이킹을 끝내고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다 룸메를 비롯한 한국인 교환학생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언어 연수를 위해 외국 유학을 갔다가 현지에 있는 한국인들과 어울리며 지내서 영어는 잘 늘지도 않고 돌아왔다는 사람들의 사례를 많이 들었고, 들을 때마다 비웃었다. 뭐 거기까지 가서 한국인들이랑 지내나 싶었는데 막상 외국에서 생활을 하게 되니 왜 한국인들을 찾게 되는지 이해가 간다. 냉정하게 판단하건대, 나의 영어 실력은 이게 끝일 것이다. 더 이상 발전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고 외국인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조금 더디지만 그렇게 큰 문제는 없이 할 수는 있다. 그래도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는 역시 한국인 뿐인 것 같다. 마음 놓고 홍콩 현지 음식이 맛없다고 욕할 수 있는 것도 김치가 그립다고 하소연할 수 있는 것도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해야 마음이 편하다.


 저녁을 먹기 위해 모인 친구들 모두 현지 음식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기에 메뉴를 정하는 일은 늘 꽤나 더디게 진행된다. 현지 음식을 제외하면 대부분 가격이 1.5배는 뛴다. 현지 음식과 비슷한 가격에 외국 음식을 제공하는 곳은 그 질이 차라리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이 나은 정도이다. 대충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취향보다는 지갑 사정이구나 싶어 싼 가격에 현지 음식을(...) 제공하는 홍콩의 프랜차이즈 식당 딤딤섬에 가게 되었다.


 딤섬은 사실 크기도 조그마한게 가격은 나간다. 쬐끄만한 것이 네 개 들어있는 접시가 한국돈으로 3500원 정도 하니 한 알에 8~900원 정도 하는 셈이다. 근데 또 울며 겨자 먹기로 조금 시켜서 먹고 있으려다 보면 배가 차오른다. 조그마해서 천천히 먹게 되어 배가 차오르는 건지, 정말 속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인 건지 그냥 기름져서 더부룩한 것인지는 아직까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맛도 있고 배가 빨리 불러서 나로서는 가성비가 좋다고 여겨진다. 늘 먹는 것은 새우가 들어가는 딤섬들인데 사실 맛은 거기서 거기다. 두 개가 있는데 그 외의 메뉴들에 도전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녁이기에 또 딤섬만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개인 메뉴도 하나씩 주문하였는데, 같이 간 여학생이 영 현지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은 모양인지 절반 정도를 남겼다. 역시 취향보다는 지갑 사정이기에 냉큼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곤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외식을 하면서도 1인당 50HKD에 그친 것은 거진 역사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밥을 먹으면서 나에게 음식을 양도해 주었던 여학우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와 내 룸메보다는 현지에서 좀 더 유흥을 찾아서 살고 있는 친구였다. 새벽 네 시 즈음에 택시를 타고 들어오다가 자기 룸메이트가 다른 친구들을 만나며 노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얘가 새벽 네 시까지 밖에서 하는 일이 있는 것에 먼저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뭘 하고 놀면 네 시에 들어올 수 있는 건지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다.


 가난한 남학생이 놀기에는 홍콩 클럽은 너무 비싸다. 차마 가보지도 못하고 기껏해야 여행 책자에서 읽은 사실이지만서도 홍콩 클럽은 기본 입장료가 심하다. 한화로 5만원은 기본으로 훌쩍 뛰어넘는 듯 하는데, 아직까지는 한 번에 5만원 이상 되는 돈을 지출할 용의가 없다. 여자들은 수요일 혹은 목요일 마다 ladies' day라고 하여 무료로 입장을 하게 해준다는 것 같은데 guy's day가 있어 남자들이 무료로 입장하는 날이 있을리가 만무하다. 어쩌면 소득 수준이 높은 홍콩에서 더더욱 상위 클래스에서 노는 남자들을 들여오려면 높은 입장료가 기본이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약간은 억울하기도 하다. 이렇게 쉽게 물갈이 되어버리는 것인가 싶어서 자괴감도 들고.


 여튼 여학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충격적인 것들이 많았다. 정말 방탕하게 살고 있는 학생들이 많구나 싶었다.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다. 단지 돈이 아까워서라도 나는 그렇게는 못살겠다. 어제 만났던 인도인 친구가 홍콩으로 대학을 결심한 이유도, 농담일 수도 있겠지만, '란콰이펑'이라는 영화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려 3편까지 만들어진 영화라는데 홍콩의 밤문화를 여실하게 보여주었고 그 어린 친구는 홀딱 반해서 홍콩으로 유학을 왔다는 것이다. 나는 중경삼림을 보면서 홍콩의 거리가 굉장히 느낌이 있구나, 뭔가 재즈풍의 자체 배경음악이 흘러나올 것 같다 하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와보니 너저분하고 지저분하고 디테일이 없어 보이기만 한다. 관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만, 어떻게 하면 다시금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홍콩에 온 지 2주가 되어가도록 제대로 된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 기숙사에서 수영을 하고는 있다만 몸이 아직 물에 적응을 하지 못한 터라 몇 바퀴 돌지 않아 지쳐버리고 만다. 그래서 현지 친구와 함께 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말 동안에 수면 패턴도 망가져 버렸고 오늘도 역시나 열시 반이 되어서야 기상할 수 있었다. 결국 열두 시에 친구를 만나 쨍쨍 내리쬐는 햇볕과 한창 달궈지고 있는 지열 앞에서 하이킹은 포기하게 되었고, 대신에 가려고 했던 산 자락의 커다란 호수, '성문 저수지'를 돌기로 했다.

 


 성문 저수지는 오늘 가서 보니 댐으로 물줄기를 막아놓은 곳이었다. 원래 사람들이 사는 곳도 있었을 텐데 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인지, 어떤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지만 댐의 밑으로 조금만 내려가도 커다란 빌딩들이 즐비한 것으로 보아서는 필시 마을을 수몰시키고 댐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냥 하이킹이라면 더운 날에 굳이 가지 않았을 테지만, 홍콩의 외곽까지 빠져 나가면서까지 (그래봤자 30분 정도 걸린다) 이 곳에 온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야생원숭이가 살기 때문이다. 살면서 원숭이를 마지막으로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동물원에 가야만 있는 존재이니까 마지막으로 동물원에 간 날에 봤읉 텐데, 동물원을 내가 간 적은 있었던가??

 


 기대를 안고 찾아간 것에 걸맞게 성문 저수지의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원숭이가 나를 반겨주었다. 기가 막혀서 사진을 찍는 나를 보며 현지 친구는 그렇게 한마리 한마리 다 찍으면 못 움직일 거라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야생원숭이가 얼마나 신기한 존재인지 잘 모르는 모양이다.


 하이킹을 할 수가 없을 듯하여 선택한 저수지 트래킹이었지만, 거의 세 시간 정도 걸렸다. 중간 중간 언덕길 정도의 경사만 있는 길이었는데도 세 시간을 걸으려니 진이 빠졌다. 하지만 본 게 정말 많았다. 원숭이보다 더 오래동안 보지 못했던 도마뱀도 한 마리 보았고, 심지어는 조그마한 실뱀까지 관찰할 수 있었다. 저수지에는 자라들이 헤엄치고 있었고 길 한 가운데에 커다랗게 누여진 똥의 주인을 물으니 야생 소? 가 산다고 한다. 소가 야생으로 존재하는지는 처음 알았지만 아마도 멧돼지를 말한게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매체를 통해 접하는 코끼리 똥만큼 큰 것을 보면 소정도는 되어야 눌 것 같기도 하다. 사실 홍콩 공기는 거의 베이징만큼이나 좋지 않다. 특히나 란콰이펑이 있는 센트럴 쪽에서 낮에 쇼핑을 하고 바닷가로 나갔다가 뿌연 하늘에 질색했던 경험이 있다. 산에서 나는 물들도 더럽다며 마시지 못하게 하고, 소 똥 때문인지는 몰라도 산길에서도 피톤치드향 같은 것은 기대도 할 수 없이 그렇게 좋지 만은 않은 냄새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종들이 살아가는구나 싶었다. 한국 산은 그래도 홍콩에 비하면 맑고 깨끗한 편인데, 동네 산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나무 풀떼기들, 곤충들 뿐이니...



 하지만 원숭이들이 그렇게 상냥한 편은 아니다. 애기 원숭이들을 보면 온화해보이고 귀엽지만, 성인 원숭이들은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다. 저수지 시작부터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문이 있어 읽어보니 이놈들이 인간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져서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런 애들이 골치를 끼치면 어떻게 끼친다는 건지, 사람이 그냥 징그러워서 피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지만 저수지 트래킹이 끝날 때 즈음에 기가 막힌 광경을 보게 되었다. 여학생 세 명 정도가 피크닉을 가는지 종이 가방을 들고 우리 맞은 편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갑다 하고 지나가는데 옆에서 원숭이 한 마리가 위협적으로 나무에서 내려오더니 여학생이 들고가는 종이가방을 낚아채려는 시도를 하였다. 휙 낚아채는 것도 아니고 "이거 내놔!"하는 식으로 떼를 쓰듯이 종이 가방을 붙잡다가 여학생의 반발이 만만치 않자 포기하고 놓아주댔다. 원숭이가 괘씸하여 쫓으려고 다가가서 손짓을 해보았지만 이놈이 도망가지는 않고 나를 보며 이를 벌리고 위협을 해왔다. 이게 날 우습게 보나 울화가 치밀었지만 원숭이가 할퀴는 것이 두려워 선심을 쓰듯이 돌아섰다. 나중에 할퀴는 것을 방지하도록 팔다리에 단단한 보호장치를 하게 된다면 달려드는 원숭이를 걷어차는 상상을 절로 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