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즈웨이베이 탐방이 끝난 후 저녁에는 인도인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이 있었다. 남자 아이 한 명은 공대 수업 팀플에서 만난 친구이고 다른 여자 아이 한 명은 그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다가 만난 친구였다. (남자 아이는 N, 여자 아이는 S) 사실 둘 다 인도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N이야 국적이 인도이지만 7~8살 때 상해로 건너가서 외국인 학교를 다녔고 S는 심지어 미국 국적이다. N은 polyU에 full time student로 등록되어 있지만 S는 교환학생 신분이다. N과 함께 점심을 기다리다가 그의 눈길이 S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아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알고보니 N도 처음 보는 상황이었다. 단지 인도인처럼 보이기에 그랬을 뿐이었다. S가 미국 국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N은 '인도인'이라는 개념 아래에서 S를 생각하였을 텐데, S는 미국인인데다가 N 본인도 인도에는 일년에 한 두 번씩밖에 가지 않는 상황이다. 이 정도 된다면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어보는 의미가 없어지지 않을까. 누가 봐도 인도인인 S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을 때 'America'라는 답을 들었던 순간이 생생하다. 어쨌든 '인디언'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져서 어색하지는 않을까 우려했던 것은 의미없었던 게 서로에게 인도 문화를 가르치려고 하며 아웅다웅 다투는 것을 보고 '아 둘다 인도인이라고 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인도인 둘이서 멕시코 음식을 좋아한다기에 그럼 다음에 멕시코 음식이나 먹으러 가자 해서 모이게 된 것이 오늘이었다. 


 사실 영어가 그렇게 편한 것은 아니지만, S의 말은 알아듣기가 너무나도 힘들다. 기본적으로 키가 작아서 그런지 성량이 풍부치 못해 데시벨이 낮은 탓도 있지만 왜 여자의 말을 들을 때 남자의 뇌 구조에서 언어 부분이 아니라 노래 부분이 활성화 된다고 하지 않는가. S의 말을 이해하는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색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N이 상당히 활달한 성격이다. 물론 S도 활달하지만 내가 말을 잘 못알아듣기에... 어쨌든 침사추이에 있는 N이 알고 있는 멕시코 음식점으로 건너가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문제는 가격이다. 많이 먹긴 했다. 1인 1메뉴에 가운데 나초 하나, 각자 맥주 한 병 씩. 나초도 그냥 먹는 과자 나초가 아니라 고기도 들어가고~ 채소도 골고루 들어간 맛있는 음식이었고 내 메뉴였던 부리또 역시 양이 어마어마 했다. 하지만 총 합해서 603HKD, 한화로 대략 9만원이 나왔다는 것은 기가 막힐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홍콩에 있는 조금 고급스러워 보인다 하는 음식점들의 가격체계는 조금 희한하다. 홍콩 로컬 식당들은 물 대신 차를 주는데, 이 차 역시 나중에 계산하려고 보면 돈을 내야하는 것이다. 찬 물을 마시는 한국 사람으로서는 밥을 먹을 때 뜨거운 차를 마셔야 하는 것이 늘 못마땅한데도 나중에 계산을 할 때 빼꼼히 꼽사리를 껴있는 것을 보면 상당히 언짢다. 또한 Service Charge개념으로 10%를 내야 한다. 이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계산방법이다. 세금도 아니고 팁 명목인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이걸로 총 음식 가격의 10%를 뜯어가는 것이다. 가난한 남학생이 가기에는 치가 떨리는 음식점들이다. 또한 맥주 가격이 어마어마 하다. 한국에서는 그냥 기분 좋게 시킬 수 있는 4000원짜리 맥주가 홍콩에서는 만 원 이상 할 것이다. 이 멕시코 음식점에서는 그보다 작은 병맥주를 60HKD, 한화 약 9000원에 판매한다. 


 인당 3만원씩 내려고 하니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음식점에서 나와 야경을 보러 빅토리아 하버로 향했다. 낮에는 두 차례 와본 적이 있었지만, 밤에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꽤나 괜찮았다. 나쁜 대기 탓인지, 밝은 밤거리 탓인지 (둘 다다) 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저물어가는 달이 하나 보여서 더욱 괜찮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더욱 쭈그러들어서 인도인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야했다. 여전히 S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턱수염도 있고, 상당히 나이가 있게 보였던 N이 사실은 98년 생이라는 것이다. 내가 2개월 가량 과외를 맡았던 애보다 꼴랑 한 살 많다. 대학으로 따지면 17학번인 셈인데, 애가 운동도 열심히 하며 생활도 참 바쁘게 살아가고 있고, 다음 주에 있을 스타트업 경연에서 발표를 맡게 되어 다음 주부터 바빠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는 더욱 충격을 받았다. 95년 생인 나는 지금 해야 할 공부조차도 귀찮고 하기 싫다는 이유로 미루고 있는데 한참 어린 동생은 운동도 몇년 째 꾸준히 하고 있고, 자신을 찾는 사람도 있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어린 나이가 아니구나 실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좀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학기 중에 드론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도 그저 나는 기계과에 이제 진입했으니까, 고작 한 살 많은 팀장과 동갑인 프로젝트 매니저 사이에서 뒤치다꺼리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 생각했었던 게 바보같다. 뭐라도 꾸준히 해서 자신있는 분야를 빨리 만들었어야 했다. 


 교환학생을 통해서 견문을 좀 넓혀야지 했는데 그 동안 단 한 번도 견문이 넓어졌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에서야말로 내 현실을 조금이나마 자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무료한 토요일을 피하기 위해 룸메이트와 코즈웨이베이로 향했다. 다행히도 내 학교 앞에서 바로가는 버스가 있었다. 코즈웨이베이는 홍콩섬에 있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야한다. 지하도로와 다리가 잘 되어있어 지상 수단으로도 충분히 다닐 수가 있지만 홍콩 수준의 디테일로는 틀림없이 어느 한 곳에서는 물이 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2층 버스에 올라가게 되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게 되는 것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탐에도 불구하고 버스의 좌석이 상당히 많아서 2층으로 올라가게 되면 쾌적하고 안락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아마 내가 홍콩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쾌적함이 아닐까 싶다. 이 습하고 디테일 없는 나라에서...


 사실 코즈웨이베이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쇼핑몰들을 보고는 눈앞이 아득했다. 누가 홍콩이 쇼핑의 도시라고 했는지... 사실 홍콩에선 쇼핑할 수 있는게 없다. 길거리에서 파는 옷들은 수준이 한참 미달이고, 쇼핑몰에서 파는 옷들을 사기에는 내 경제 수준이 한참 미달이다. 홍콩에서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전자를 산다고 할 수는 없고 틀림없이 후자를 노리고 다들 쇼핑을 할 터인데 다들 그렇게 잘 사나, 내 경제 수준이 이거밖에 안되나 자괴감도 들고...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출발하였기에 뭘 좀 먹어야겠다 싶어 기어들어간 곳은 맥도날드였다. 룸메는 어쭙잖은 길거리 음식을 먹느니 맥도날드를 먹겠다고 했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이 곳의 음식들이 대체로 기름진데, 그 꽃이 길거리 음식이다. 온통 튀기고 지지고 볶는데 기름기가 줄줄 흐른다. 종이같은 걸로 받치고 길거리 음식을 먹는다 치면 종이를 뚫고 기름이 흘러 나올 정도이다. 또한 여기 맥도날드 가격이 좀 괜찮기도 하다. 더블치즈버거와 맥스파이시 세트는 24홍콩달러이니 3200원 정도면 든든하게 먹을 수 있다. 돈이 좀 있다면 40달러가량 투자하여 (6~7000원) 맥도날드 시그니처를 먹을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전자를 택했다.


 맥도날드로 배를 채우고 나서 짧은 회의를 통해 선정한 다음 행선지는 이케아였다. 한국에 있는 이케아도 가보지 못했던 나였기에 내게 이케아란 500일의 썸머에서 보았던 로맨틱하고 유쾌한 장소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직접 경험한 이케아 역시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단순히 가구들의 활용만으로 주거 공간의 느낌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였다. 한때 그냥 갖고오는 것이 괜찮은지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이케아 연필도 하나 주워올 수 있었다.


홍콩 생활 공간의 문제점 중에 하나는 에어컨이다. 대부분의 공간에서 파워냉방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처럼 문을 열어놓고 냉방을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희한하게도 전기료가 가장 싼 곳은 한국인데 냉방비를 가장 아끼는 곳도 한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케아도 파워냉방을 실시하고 있어서 우리는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나야했다. 그렇게 바로 앞에 있는 빅토리아 파크로 향하게 되었다.


 홍콩은 그 뭐냐, 내가 살고 있는 세종시에서 추구하고 있는 도심 녹지화? 맞나? 그거를 충실히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공간의 지대가 비쌀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지역마다 공원이 하나씩 있다. 침사추이 금싸라기 당 한 가운데에 존재하는 kowloon park와 거대한 쇼핑 단지 바로 앞에 존재하는 빅토리아 파크까지, 또 길거리와 도로에도 가로수가 잘 조성되어 있다. 관리가 잘 안되고 있다는 사실은 둘째로 치더라도 나무를 계속 심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배울만 하다.



 빅토리아 파크는 상당히 컸다. 조깅 트랙이 있고 가운데에는 드넓은 잔디밭이 있었다. 한창 더울 때라 사람들이 없을 줄알았는데 잔디밭에서 공과 놀고있는 한무더기의 남정네들과 철봉을 하던 근육질의 아저씨, 무엇보다도 한창 달궈졌을 우레탄 코트위에서 농구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길거리에 한국만큼 헬스 클럽이 많지 않다. 사실 헬스장이 학교 밖에 있는 것을 본적도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뚱뚱하지도 않고, 오히려 몸이 좋은 사람들이 많아 가끔씩 놀란다. 다들 생활 버닝을 어느 정도 시행하고 있는 듯하다. 운동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시원한 레몬티를 마시고 있으려니 몸에 죄를 짓는 기분이었지만 여유를 한껏 즐길 수 있었다.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서점을 들렀다. 별 생각없이 룸메이트를 따라간 것이었지만 책 디자인이 의외로 깔끔하게 되어있는 것을 보니 놀라웠다. 이 사림들도 미적감각이란게 있는 것이었나...! 이제껏 미적감각이 한국과 다른갑다 하고 길거리의 포스터를 볼 때마다 자위해왔지만, 책의 디자인을 보니 이 사람들도 동양의 미적감각, 여백의 미와 캘리그라피에 대한 감각을 갖고는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단지 개의치 않을 뿐인 것인가...! 참 알다가도 모를 동네이다.